최근 서울고등법원은(2025년 1월 8일 선고ㆍ2024나2029879 판결) 재건축 조합이 시공자와 체결한 공사도급계약 금액을 증액하는 결의를 조합원총회에서 진행함에 있어, 공사비 검증 절차를 생략한 상태에서 이뤄진 결의가 과연 무효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요하는 `특별가중 의결정족수` 요건이 적용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도시 및 주거환경비법(이하 도시정비법)」상 공사비 증액 관련 절차를 둘러싼 실무상 최대 쟁점들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자재비ㆍ금융비 급등으로 인해 시공자들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빈번해진 현실에서 법리와 실무 사이의 조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피고인 C 재건축 조합은 2023년 5월 31일 조합원총회를 열고 기존 시공자인 보조참가인 D와 체결한 공사도급계약의 금액을 약 176억 원 증액하는 내용의 결의를 했다. 이에 대해 일부 조합원들인 원고들은 해당 결의가 ▲도시정비법 제29조의2에 따른 공사비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공사비가 기존 대비 약 10.63%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않았으며 ▲물가변동에 따른 증액은 공사 계약상 금지돼 있음에도 이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중대하고 명백한 절차적ㆍ내용적 하자가 있어 결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먼저 공사비 검증 절차 누락에 관한 원고들의 주장을 두고, 도시정비법상 3% 이상 공사비가 증액되는 경우에는 검증기관을 통해 공사비 적정성에 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검증 미(未)이행이 곧 결의 무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법은 공사비 검증을 요청할 의무는 부과하고 있으나 이를 어겼다고 해서 그 자체로 공사비 변경 결의를 무효화시키는 명시적 조항은 없고, 이와 관련한 별도의 형사처벌, 과태료, 행정상 불이익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검증 절차는 일종의 `사전적 투명성 확보 장치`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또한 법원은 실제로 이 사건에서 조합이 공사비 증액 요청의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공유하고 관련 자료를 배포하며 일정한 협의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상당수 조합원이 신속한 사업 추진과 분양 지연에 따른 손실 회피 등을 고려해 결의에 찬성했음을 주목했다. 다시 말해, 단지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결의 전체를 무효화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조합원 전체의 이익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다음으로 판단의 핵심이 된 것은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특별가중 의결정족수` 적용 여부였다. 도시정비법 제45조제4항은 사업시행계획 또는 관리처분계획의 수립ㆍ변경 시 사업비가 생산자물가 상승률 등을 제외하고 10% 이상 증가하는 경우, 조합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업시행계획이나 관리처분계획 그 자체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공자와 체결한 도급계약의 금액을 조정한 사안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공사비`와 `정비사업비`는 구분돼야 하며, 공사비 증액이 곧 정비사업비의 10% 이상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실제로 행정소송에서 다퉈진 동일한 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정비사업비 증가율을 약 9.18%로 판단하며 특별정족수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고, 생산자물가 상승률까지 반영하면 그 수치는 더 낮아진다는 계산도 나왔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본 판결도 공사도급계약 변경에 대해서는 `조합원 과반수 찬성`이라는 통상의 정족수 요건만으로 적법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아울러 원고들은 도급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에 따라 착공 이후에는 물가변동을 이유로 공사비를 조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증액에는 물가변동분이 반영됐다고 주장하며 계약위반이라는 점을 들어 결의의 무효를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경제적 사정의 급격한 변화가 있으면 계약 내용도 일정 부분 조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20년 착공 당시 건설공사비지수는 99.34였으나, 2023년 증액 요청 당시에는 126.05로 약 27% 상승한 점을 감안할 때, 「건설산업기본법」 상 경제적 사정 변경 원칙에 따라 계약금액의 조정이 허용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실제로 이번 증액은 최초 증액 요청안(670억 원 상당)보다 대폭 삭감된 176억 원 규모로 조율된 점, 그 내용에 지연손해금과 금융비용 등이 포함돼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단순한 공사비 인상만으로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조합이 공사비 증액이나 계약 변경을 추진함에 있어 어떤 절차적 정당성과 실질적 명분을 확보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단순히 도시정비법상 규정만 충족했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으며, 조합원에 대한 정보 공개, 협의, 동의 확보 등 민주적 정당성이 병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반대로 형식적 요건 일부가 누락됐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결의 전체를 무효로 단정하기보다는 사업 추진의 맥락, 조합원 전체의 이익, 경제적 현실 등을 입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법원의 관점도 강하게 드러난다.
결국 본 판결은 재건축 조합 집행부가 공사비 협상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절차를 구성하고 총회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기준점을 제시한다. 앞으로도 유사한 쟁점에서 본 판결의 판단 논리가 중요한 전례로 작용할 것이며, 조합은 이 판례를 바탕으로 공사비 증액과 총회 결의 관련 절차를 한층 더 정교하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조합 집행부는 `합법성`과 `정당성`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사업의 신뢰성과 조합원 동의를 확보하는 핵심임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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